2026년 9월 13일, 우리나라 간첩죄가 크게 달라졌습니다.
그동안 간첩죄라고 하면 대부분 북한과 관련된 사건을 떠올렸습니다.
실제로 기존 형법은 간첩죄의 상대방을 ‘적국’으로 규정하고 있어 중국이나 미국, 일본 등 다른 나라를 위해 국가기밀을 빼돌린 경우에는 형법상 간첩죄를 적용하기 어려웠습니다.
하지만 오늘부터는 달라집니다.
새 형법에는 ‘외국 등을 위한 간첩’이라는 조항이 새로 생겼습니다.
외국 또는 이에 준하는 단체를 위해, 그쪽의 지령·사주·연락을 받아 국가기밀을 탐지하거나 수집하고, 누설·전달·중개하면 3년 이상의 유기징역에 처할 수 있습니다.
쉽게 말하면 이제는
북한뿐 아니라 중국·미국·일본 등 어느 외국을 위해서라도 국가기밀을 빼돌리면 간첩죄 적용 가능성이 생긴 것입니다.
73년 만에 간첩죄가 크게 바뀌었다
우리 형법의 간첩죄 조항은 1953년 형법 제정 이후 오랫동안 기본 구조가 유지돼 왔습니다.
당시는 6·25전쟁 직후였기 때문에 ‘적국’을 중심으로 법이 만들어졌습니다.
그래서 사실상 북한과 관련된 간첩행위를 처벌하는 법으로 기능해 왔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국가 간 경쟁이 군사 분야에서만 벌어지는 것이 아니라
반도체, 배터리, 디스플레이, 조선, AI, 방산
같은 첨단산업에서도 치열하게 벌어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국회가 이번 법을 바꾼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법제처가 공개한 개정 이유를 보면 간첩죄 적용 대상을 기존 ‘적국’에서 ‘외국 또는 이에 준하는 단체’로 확대하는 것이 핵심이라고 명시돼 있습니다.
예전에는 중국에 기술을 빼돌려도 간첩죄가 아니었다?
바로 이 부분 때문에 법 개정 요구가 계속됐습니다.
예를 들어 국내 반도체 회사의 핵심기술을 중국 기업에 넘겼다고 가정해 보겠습니다.
기술 유출 자체는 산업기술보호법이나 부정경쟁방지법 등으로 처벌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중국이 우리나라의 법률상 ‘적국’은 아니기 때문에 형법상 간첩죄를 적용하기는 어려웠습니다.
실제로 최근 해외 기술유출 사건 가운데 중국 관련 사건이 가장 많았고, 반도체·디스플레이·이차전지·조선 등 우리나라 핵심산업 기술이 주요 대상이었습니다.
그래서 산업계에서는 오래전부터 이런 질문이 나왔습니다.
“국가 경쟁력을 좌우하는 첨단기술을 외국에 빼돌렸는데 왜 간첩죄는 적용하지 못하나?”
이번 개정법이 바로 그 빈틈을 메우려는 것입니다.
중국만 대상인가? 미국도 포함된다
아닙니다.
법에는 특정 국가 이름이 없습니다.
‘외국 또는 이에 준하는 단체’
라고 되어 있습니다.
따라서 중국뿐 아니라 미국, 일본, 유럽 국가 등 어느 나라든 원칙적으로 대상이 될 수 있습니다. 우방국이라고 자동으로 제외되는 것도 아닙니다.
예를 들어 한국의 국가기밀을 미국 기업이나 기관에 넘겼다고 해도 법에서 정한 요건을 모두 충족한다면 간첩죄가 문제될 수 있습니다.
이 때문에 이번 법 개정은 단순히
‘중국을 겨냥한 법’
으로만 보는 것도 정확하지 않습니다.
법의 기준은 국가의 우호관계가 아니라 외국을 위해 국가기밀을 빼돌렸느냐입니다.
그렇다면 회사 자료 하나만 넘겨도 간첩죄인가?
여기서 가장 중요한 부분입니다.
아닙니다.
회사 내부자료를 외국에 넘겼다고 해서 모두 간첩죄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새 형법 제98조의2에는 몇 가지 중요한 조건이 있습니다.
먼저 대상 정보가 ‘국가기밀’이어야 합니다.
또 단순한 개인 행동을 넘어 외국 또는 이에 준하는 단체의 지령·사주 또는 그 밖의 의사 연락 아래 행동했다는 점도 문제가 됩니다.
그래서 제목만 보고
“외국 회사에 회사 자료를 보냈으니 이제 전부 간첩죄다”
라고 이해하면 지나칩니다.
기업의 일반적인 영업비밀 유출은 여전히 산업기술보호법이나 부정경쟁방지법 등 다른 법률이 적용될 수 있습니다.
간첩죄가 적용되려면 국가기밀인지, 외국과 어떤 연락관계가 있었는지, 누구를 위해 행동했는지 등이 수사와 재판에서 입증돼야 합니다.
‘국가기밀’이라는 말이 생각보다 중요하다
앞으로 실제 사건에서 가장 큰 쟁점 가운데 하나가 될 가능성이 있는 것이 바로 국가기밀의 범위입니다.
과거 대법원 판례에서도 형법상 국가기밀은 단순히 모든 비공개 정보를 뜻하지 않았고, 구체적으로 어떤 정보인지 판단해야 한다고 봐 왔습니다. 공개된 장소나 누구나 접근 가능한 정보까지 막연히 국가기밀이라고 할 수는 없다는 취지의 판결도 있습니다.
반대로 현대 국가에서는 군사정보만이 아니라 경제·과학·산업기술이 국가안보와 직접 연결될 수도 있습니다.
반도체 공정기술이나 첨단 AI, 배터리 제조기술 가운데 어떤 정보가 형법상 국가기밀로 인정될지는 앞으로 실제 사건을 통해 기준이 더 구체화될 가능성이 큽니다.
그래서 이번 법이 시행됐다고 해서
“반도체 기술은 전부 국가기밀이다”
라고 단정하는 것도 정확하지 않습니다.
처벌은 얼마나 강해졌나
새로 만들어진 형법 제98조의2는 외국 등을 위한 간첩행위에 대해
3년 이상의 유기징역
을 규정하고 있습니다.
기존의 ‘적국을 위한 간첩’은 더 무겁습니다.
적국의 지령 등을 받아 국가기밀을 탐지·수집·누설·전달·중개하면 사형, 무기 또는 7년 이상의 징역에 처할 수 있습니다.
즉 법은
적국을 위한 간첩행위와
그 밖의 외국을 위한 간첩행위
를 구분해 형량도 다르게 정했습니다.
또 미수범뿐 아니라 일정한 예비·음모·선동·선전 행위도 처벌할 수 있도록 관련 조항이 함께 정비됐습니다.
외국 기업도 포함될 수 있을까?
법에는 국가뿐 아니라 ‘외국 또는 이에 준하는 단체’라고 적혀 있습니다.
그래서 외국 정부뿐 아니라 일정한 외국 단체나 기업과 연결된 산업스파이 사건에도 적용 가능성이 거론되고 있습니다.
특히 반도체 회사 퇴직자를 높은 연봉으로 영입하거나, 별도 법인을 세운 뒤 핵심기술을 확보하려는 방식처럼 산업기술 유출 방식이 복잡해지고 있다는 지적이 계속돼 왔습니다.
다만 어떤 외국 기업이 ‘이에 준하는 단체’에 해당하는지, 어떤 산업기술이 ‘국가기밀’로 인정되는지는 앞으로 법원의 구체적인 판단이 필요한 부분입니다.
즉 산업스파이를 겨냥한 법적 무기는 강해졌지만, 실제 적용에는 여전히 해석의 영역이 남아 있습니다.
왜 반도체가 가장 많이 거론될까
지금 국가 간 첨단기술 경쟁의 중심에는 반도체가 있습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가진 첨단 메모리, HBM, 제조공정 기술은 단순한 회사 자산을 넘어 한국 수출과 산업 경쟁력에 직접적인 영향을 줍니다.
최근에는 AI 경쟁까지 겹치면서 첨단 반도체 기술이 경제문제를 넘어 경제안보 문제로 취급되고 있습니다.
로이터도 이번 형법 개정을 한국이 치열해지는 반도체·전략산업 경쟁 속에서 핵심기술을 보호하기 위한 조치로 평가했습니다.
우리가 며칠 전 살펴본 삼성전자 2나노나 HBM4 같은 기술도 바로 이런 경쟁의 한복판에 있습니다.
어떤 기업이 몇 년 동안 수조원을 투자해 확보한 기술이 직원 한 명의 USB나 이메일 하나로 해외에 넘어간다면 기업뿐 아니라 국가 경쟁력 자체가 흔들릴 수 있다는 것이 법 개정을 요구해 온 쪽의 논리입니다.
실제 해외 기술유출은 얼마나 많았나
산업스파이 문제가 단순한 가정만은 아닙니다.
연합뉴스가 산업기술 유출 현황을 분석한 자료에서는 해외 유출 국가 가운데 중국이 가장 많은 18건이었고, 베트남 4건, 인도네시아 3건, 미국 1건 등이 확인됐습니다.
분야별로는 반도체 5건, 디스플레이 4건, 이차전지 3건, 조선 2건 등이었습니다.
핵심은 여기서도 중국만 있는 것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기술을 원하는 곳이 있다면 어느 국가든 유출 대상이 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이번 법도 특정 나라가 아니라 모든 외국을 대상으로 한 것입니다.
중국 정부도 반응했다
법 시행을 앞두고 중국 정부도 공식적인 반응을 내놨습니다.
중국 외교부는 중국 기업들에게 해외에서 현지 법과 규정을 지키도록 요구해 왔다면서도, 한국을 포함한 각국이 중국 기업의 정상적인 투자와 경영을 보장하고 공평하고 차별 없는 환경을 제공해야 한다고 밝혔습니다.
기술유출 사건에서 중국 관련 사례가 많이 거론되는 상황에서 간첩죄 확대가 시행되자 중국도 법의 실제 적용을 지켜보겠다는 의미로 볼 수 있습니다.
일반 직장인도 조심해야 하나?
대부분의 평범한 직장인이 갑자기 간첩죄를 걱정할 필요는 없습니다.
정상적인 해외 출장이나 외국 기업과의 기술협력, 업무상 자료 전달이 모두 간첩행위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이번 법은 외국을 위해 국가기밀을 불법적으로 탐지·수집·누설·전달하는 행위를 대상으로 합니다.
하지만 국가핵심기술이나 보안자료를 다루는 반도체·방산·배터리·조선·AI 관련 기업 직원이라면 이전보다 보안의 중요성이 더 커진 것은 분명합니다.
특히 퇴직 후 경쟁 외국기업으로 이직하거나, 개인 이메일·클라우드·USB 등을 이용해 회사 자료를 반출하는 행동은 심각한 법적 문제가 될 수 있습니다.
물론 이런 경우에도 구체적으로 어떤 법이 적용되는지는 정보의 성격과 행위 방식에 따라 달라집니다.
기술을 해외에 넘기면 무조건 간첩죄? 핵심 정리
이번 개정법에서 가장 오해하기 쉬운 부분을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중국에 기술을 넘겼다 → 무조건 간첩죄
아닙니다.
미국은 우방이니까 기술을 넘겨도 간첩죄가 아니다 → 이것도 아닙니다.
핵심은 국가가 어디냐가 아니라,
① 외국 또는 이에 준하는 단체를 위해 행동했는지
② 그쪽의 지령·사주·연락 등이 있었는지
③ 대상 정보가 국가기밀인지
④ 이를 탐지·수집·누설·전달·중개했는지
입니다.
이 요건이 충족돼야 새 간첩죄 적용을 검토할 수 있습니다.
이번 법이 갖는 진짜 의미
간첩이라는 말을 들으면 과거에는 군사기지를 촬영하거나 군사기밀을 빼돌리는 모습을 떠올렸습니다.
하지만 이제 국가 간 경쟁은 달라졌습니다.
반도체 한 세대의 기술격차, AI 알고리즘 하나, 배터리 제조공정 하나가 국가 산업의 미래를 좌우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앞으로 간첩죄도 단순한 군사안보만이 아니라 경제안보와 첨단기술 보호 문제와 훨씬 가까워질 가능성이 있습니다.
오늘부터 시행된 새 간첩죄는 그런 시대 변화를 법에 반영한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처벌범위가 넓어진 만큼 또 하나 중요한 것도 있습니다.
어디까지가 정상적인 기술교류이고 어디부터가 국가기밀 유출인지 기준이 명확해야 한다는 점입니다.
산업기술 보호는 필요하지만 정상적인 국제협력이나 연구 활동까지 위축돼서는 안 됩니다.
결국 새 법이 성공하려면 강한 처벌만큼이나 명확하고 예측 가능한 적용기준이 중요합니다.
오늘부터 가장 크게 달라지는 한 가지
그동안은
“북한이 아니라면 형법상 간첩죄 적용이 어렵다”
는 한계가 있었습니다.
오늘부터는 더 이상 그렇지 않습니다.
중국이든 미국이든 일본이든, 외국 또는 이에 준하는 단체를 위해 국가기밀을 빼돌린 경우 새로운 간첩죄의 적용 대상이 될 수 있습니다.
대한민국의 안보가 이제 군사기밀만으로 결정되는 시대가 아니라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반도체와 AI, 배터리 같은 기술이 곧 국가 경쟁력이 된 시대.
오늘부터 간첩죄 역시 그 변화에 맞춰 73년 만에 새로운 시대에 들어섰습니다.
참고자료
국가법령정보센터 — 형법 제98조·제98조의2
2026년 9월 13일부터 시행되는 개정 형법 원문입니다.
형법 제98조·제98조의2 확인하기
국가법령정보센터 — 형법 개정 이유
간첩죄 적용 대상을 기존 ‘적국’에서 ‘외국 또는 이에 준하는 단체’로 확대한 공식 개정 취지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형법 개정 이유 보기
Reuters — South Korea’s expanded espionage law takes effect amid push to protect chip technology
반도체 등 핵심기술 보호와 간첩죄 확대 시행 배경을 다룬 기사입니다.
Reuters 기사 보기
연합뉴스 — 첨단기술 노리는 산업 스파이…간첩죄 개정으로 근절될까
반도체·디스플레이·배터리 등 기술유출 문제와 개정 간첩죄의 한계를 분석한 기사입니다.
연합뉴스 기사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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