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은 사람이 살아가기 위한 가장 기본적인 공간입니다.
그런데 요즘 서울에서는 이런 말이 나옵니다.
“집을 사고 싶어서 산 게 아니라, 전셋집을 못 구해서 샀습니다.”
전세 매물은 줄어들고, 어렵게 나온 전셋집의 보증금은 계속 오릅니다. 월세로 돌리자니 매달 나가는 돈이 만만치 않습니다.
결국 일부 세입자들은 이렇게 생각하게 됩니다.
“이 돈을 전세보증금으로 넣을 바에는 대출을 받아서라도 차라리 집을 사는 게 낫지 않을까?”
요즘 부동산 시장에서 말하는 이른바 ‘생존 매수’입니다.
그리고 그 움직임이 이제 강남이 아니라 성북·노원·중랑·강북·구로 등 서울의 중저가 지역으로 번지고 있습니다.
정말 서울 외곽 아파트도 20억원일까?
먼저 제목부터 정확히 볼 필요가 있습니다.
서울 외곽의 모든 아파트가 20억원이라는 뜻은 아닙니다.
하지만 과거에는 20억원 아파트라고 하면 강남이나 한강변 고급 아파트를 먼저 떠올렸는데, 이제는 비강남권의 전용면적 84㎡, 이른바 ‘국민평형’에서도 20억원 거래가 실제로 등장했습니다.
성북구 길음동 래미안길음센터피스 전용 84㎡는 최근 20억원에 거래되며 신고가를 기록했습니다.
한 달 전 거래가격보다 1억5000만원 오른 가격입니다.
같은 길음동 롯데캐슬클라시아 전용 84㎡도 19억1000만원에 거래됐습니다.
강서구 마곡엠밸리7단지는 19억8500만원, 은평구 DMC센트럴자이는 19억1000만원, 구로구 신도림4차e편한세상은 18억9000만원까지 올라왔습니다.
물론 이들은 각 지역에서도 선호도가 높은 단지입니다.
따라서 “서울 외곽 아파트가 전부 20억원이 됐다”고 말하면 과장입니다.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방향입니다.
과거 강남 중심으로 움직이던 가격 상승세가 실수요자가 많이 찾는 비강남권과 중저가 지역으로 확산되고 있다는 점입니다.
전세가 얼마나 올랐길래 집을 사나
집을 살 생각이 없던 사람까지 매매시장에 들어오는 가장 큰 이유 가운데 하나가 전세입니다.
한국부동산원 자료를 보면 올해 9월 첫째 주까지 서울 아파트 전셋값은 누적으로 7.61% 상승했습니다.
그런데 일부 지역은 훨씬 많이 올랐습니다.
성북구는 12.57%, 노원구 11.76%, 도봉구 9.68%, 강북구 9.59% 상승했습니다.
서울시가 공개한 실거래 통계에서도 5월 서울 아파트 전세 실거래가격은 전월보다 1.04% 상승했고, 동북권은 한 달 동안 2.25% 올랐습니다. 6월에도 서울 전세 실거래가격은 다시 1.28% 상승하며 4개월 연속 1%대 상승세를 이어갔습니다.
전세가격이 이렇게 오르면 세입자 입장에서는 선택지가 줄어듭니다.
예를 들어 전세보증금이 5억원에서 6억원으로 오른다면 1억원을 추가로 마련해야 합니다.
그런데 주변 아파트 매매가격이 7억~8억원이라면,
“전세에 6억원을 묶느니 조금 더 빌려서 사겠다”
는 생각을 하는 사람이 생길 수밖에 없습니다.
실제로 도봉구 일부 사례에서는 전세와 매매가격 차이가 수천만원 수준까지 좁혀지면서 세입자가 살던 집을 매입하는 사례도 나타났습니다.
더 큰 문제는 ‘가격’보다 전셋집 자체가 줄고 있다는 것
전세가 비싸진 것도 문제지만 더 심각한 것은 선택할 집 자체가 줄었다는 점입니다.
서울 아파트 전세 매물은 1년 전보다 약 12% 감소했습니다.
특히 중랑구는 71.7%, 동대문구 68.3%, 구로구 65.1%, 금천구 56.9%, 노원구 55.3%, 도봉구 51.3% 감소한 것으로 집계됐습니다.
다른 기간으로 봐도 흐름은 같습니다.
올해 1월부터 4월까지 서울 외곽 8개 자치구의 아파트 전세 매물은 2298건에서 940건으로 59.1% 줄었습니다.
같은 기간 서울 전체 감소율 32.2%보다 훨씬 가팔랐습니다.
이 정도면 세입자 입장에서는 단순히
“조금 더 싼 전셋집을 찾으면 되지”
라고 말하기 어려워집니다.
싸고 비싸고를 떠나 원하는 지역에 들어갈 전셋집이 없는 상황이 생기기 때문입니다.
전세는 줄고 월세는 늘어난다
전세에서 밀려난 사람에게 남는 선택지는 월세입니다.
실제로 서울 임대차 시장은 빠르게 월세 중심으로 이동하고 있습니다.
서울시 자료를 보면 지난 6월 서울 아파트 월세 거래는 8819건으로 전세 7477건보다 많았습니다.
전체 임대차 거래 가운데 월세 비중이 54.1%, 전세는 45.9%였습니다.
전세라면 목돈을 맡겼다가 계약이 끝나면 돌려받을 수 있지만, 월세는 매달 소득에서 빠져나갑니다.
월 100만원이면 1년에 1200만원, 월 150만원이면 1800만원입니다.
특히 자녀를 키우고 생활비·교육비까지 부담하는 30~40대에게 월세 상승은 단순한 주거 문제가 아니라 가계 전체를 흔드는 문제가 됩니다.
그래서 30대가 집을 사고 있다
이 흐름은 실제 매수자 연령에서도 확인됩니다.
지난 7월 서울 강서구 아파트 매입자 가운데 30대 비중은 50.8%, 구로구는 50.5%였습니다.
관악·노원·성북에서도 30대 비중이 40~50% 수준을 기록했습니다.
이걸 단순히
“젊은 사람들이 집값이 오를까 봐 투기한다”
고 설명하는 것도 현실과는 거리가 있습니다.
물론 가격 상승 기대 때문에 매수하는 사람도 있을 겁니다.
하지만 전셋집이 줄고 전세보증금이 급등하면서 ‘계속 세입자로 남는 것도 위험하다’고 판단해 집을 사는 실수요자도 함께 늘고 있습니다.
서울시 역시 최근 거래가 강남 고가주택보다 15억원 이하 중저가 주택과 강북·서남권 실수요 중심으로 이동하고 있다고 분석하고 있습니다.
도대체 왜 전셋집이 줄었을까?
한 가지 이유로 설명하기는 어렵습니다.
먼저 신규 주택 공급과 입주 물량이 부족한 지역이 있습니다.
올해 9~12월 강북·노원·도봉·관악구에는 신규 아파트 입주 예정 물량이 사실상 없는 것으로 집계됐습니다. 성북·중랑·구로·금천도 공급량이 많지 않습니다.
여기에 집주인의 실거주 전환, 각종 세제·대출 정책 변화, 전세의 월세 전환 등이 겹칩니다.
실거주를 강화하는 정책은 투기 억제라는 목적이 있지만, 기존 임대주택의 집주인이 실제 거주를 선택하면 세입자에게 돌아갈 전세 물량은 그만큼 줄 수 있습니다.
반대로 집주인 입장에서는 보증금을 크게 받는 전세보다 보증금을 낮추고 매달 월세를 받는 방식을 선택하기도 합니다.
즉 지금의 전세난은
공급 부족 + 집주인 실거주 증가 + 월세 전환 + 정책 변화 + 가격 상승 기대
등 여러 요인이 겹친 결과로 보는 것이 현실적입니다.
집값을 잡으려 했는데 왜 외곽이 더 오를까?
최근 부동산 시장의 또 다른 특징은 고가 지역보다 상대적으로 저렴했던 지역으로 수요가 이동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대출 규제가 강화되면 자금이 많이 필요한 강남 고가주택은 거래하기가 어려워집니다.
그런데 집이 꼭 필요한 실수요까지 사라지는 것은 아닙니다.
결국 같은 서울 안에서 상대적으로 대출 부담이 작은
성북, 노원, 중랑, 강북, 구로, 관악 등으로 이동합니다.
서울시도 대출 규제 이후 중저가 아파트 중심의 실수요가 강북·서남권에 집중되는 현상을 확인하고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역설적인 현상이 발생합니다.
강남 고가아파트는 가격이 조정되는데, 그동안 상대적으로 저렴했던 서울 외곽은 오히려 수요가 몰리면서 가격이 더 빠르게 뛰는 것입니다.
서울 평균 아파트 가격도 이미 16억원을 넘었다
문제는 몇몇 인기 단지만의 이야기가 아니라는 점입니다.
KB부동산 집계 기준 지난 8월 서울 아파트 평균 매매가격은 16억739만원으로 처음 16억원을 넘어섰습니다.
강북 14개구의 평균 아파트 가격도 10억원을 넘어섰습니다.
서울 아파트를 가격순으로 세웠을 때 가운데에 해당하는 중위가격 역시 약 12억9167만원 수준입니다.
평범한 직장인이 월급만 모아서 집을 사기에는 너무 큰 숫자입니다.
1년에 3000만원을 저축해도 10억원을 모으려면 단순 계산으로 33년이 걸립니다.
그동안 집값이 전혀 오르지 않는다는 가정에서조차 그렇습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이 결국 부모 도움이나 대출 없이는 서울에서 집을 사기 어려운 구조에 놓입니다.
‘집을 사고 싶다’가 아니라 ‘살 곳이 필요하다’
저는 이번 현상에서 가장 씁쓸한 표현이 ‘생존 매수’라고 생각합니다.
원래 집을 산다는 것은 인생에서 큰 선택입니다.
직장이 안정되고, 돈을 모으고, 가족계획을 세운 뒤 형편에 맞는 집을 선택하는 것이 자연스러운 모습일 겁니다.
그런데 지금은 일부 사람에게 선택의 순서가 거꾸로 되고 있습니다.
전셋집이 없다.
전세는 너무 비싸다.
월세는 매달 너무 많이 나간다.
그래서 결국
“집을 살 준비가 충분히 된 것은 아니지만, 지금 안 사면 더 어려워지는 것 아닐까?”
라는 불안 속에서 매수하게 됩니다.
주택을 투자상품으로 보지 않는 사람에게까지 이런 선택을 강요하는 시장이라면 정상적인 주거환경이라고 하기는 어렵습니다.
그렇다고 지금 무조건 집을 사야 한다는 뜻도 아니다
여기서 가장 조심해야 합니다.
전셋값이 오른다고 해서
“지금이라도 무조건 집을 사야 한다”
는 결론으로 가서는 안 됩니다.
서울 일부 지역의 가격은 이미 단기간에 상당히 올랐고, 금리와 대출 규제, 세금, 경기 상황에 따라 시장은 언제든 달라질 수 있습니다.
특히 20억원이라는 숫자는 비강남권 전체 평균이 아니라 인기 있는 특정 단지의 신고가 사례입니다.
불안해서 급하게 매수하면 향후 집값이 조정될 때 큰 금융부담을 떠안을 수 있습니다.
따라서 실수요자라면 집값 전망보다 먼저 내 소득으로 원리금을 감당할 수 있는지, 몇 년 이상 실제 거주할 것인지, 주변 전세와 월세의 총비용은 얼마인지, 해당 지역에 앞으로 얼마나 많은 새 아파트가 들어오는지를 함께 봐야 합니다.
정말 필요한 것은 ‘집값 상승’도 ‘집값 폭락’도 아니다
무주택자 입장에서 꼭 집값이 폭락해야 좋은 것도 아닙니다.
이미 집을 가진 사람에게 집값 폭락은 또 다른 경제적 충격이 될 수 있습니다.
반대로 지금처럼 몇 달 사이 가격이 수억원씩 오르는 시장 역시 정상적이라고 보기 어렵습니다.
사람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예측 가능한 주거비와 충분한 주택 선택지입니다.
전세든 월세든 매매든,
내 소득 수준에 맞춰 선택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전세가 사라지고, 월세는 올라가고, 그 부담에 떠밀려 집을 샀더니 그 집값까지 급등하는 구조라면 결국 가장 큰 부담을 지는 사람은 집이 꼭 필요한 평범한 실수요자입니다.
서울 외곽 20억원 시대가 우리에게 던지는 질문
성북구 국민평형 아파트가 20억원을 넘어섰다는 사실 자체도 놀랍습니다.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그 가격이 왜 만들어지고 있는가입니다.
서울 아파트 전셋값은 올해 들어 7% 넘게 올랐고 일부 지역은 10% 이상 상승했습니다.
전세 매물은 크게 줄었습니다.
월세 비중은 전세를 넘어섰습니다.
그리고 그 부담을 견디지 못한 30대 실수요자가 중저가 아파트 매매시장으로 이동하고 있습니다.
집은 사람이 평생을 살아가는 공간입니다.
그런데 평생 일하고 돈을 모아도 내 한 몸 편히 지낼 집을 마련하기 어렵다고 느끼는 사람이 많아진다면, 이것은 단순히 아파트 가격 몇 억원의 문제가 아닐 것입니다.
결국 주택정책의 목표도 숫자를 잠시 눌러놓는 것이 아니라,
전세·월세·매매 가운데 평범한 사람이 자신의 형편에 맞는 주거를 선택할 수 있도록 충분한 공급과 안정적인 시장을 만드는 것
이어야 합니다.
서울 외곽의 20억원 아파트보다 더 무겁게 봐야 할 문제는 어쩌면 이것입니다.
집을 사고 싶어서가 아니라, 살 곳을 찾기 위해 집을 사야 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는 것.
지금의 서울 주택시장이 우리에게 던지고 있는 가장 큰 질문입니다.
참고자료
뉴시스 — 전세 씨 마르자 ‘생존 매수’…외곽도 20억 돌파
서울 비강남권 20억원 거래와 전세 매물 감소, 30대 매수 증가 등을 분석한 기사입니다. 기사 보기
서울특별시 — 5월 아파트 매매 실거래가격 상승폭 확대·전세 1%대 상승 지속
서울 전세가격과 월세 거래 비중 등 공식 시장자료입니다. 서울시 공식자료 보기
서울특별시 — 6월 아파트 매매 실거래가격 상승폭 확대
6월 서울 아파트 매매·전세 실거래가격 변화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서울시 공식자료 보기




